
우이 아카이브, 첫 장을 열며

우이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의 모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이곳까지 왔는지, 어떤 집착과 어설픈 줏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드러내는 자국입니다. 완성된 답을 늘어놓는 진열장이 아니라, 묻고 헤매며 남긴 과정의 흔적을 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우리의 발자취이자, 동시에 옷을 입는 당신이 자신의 시간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조금 더 오래 머물며 끝까지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이에게 글은 가장 빠른 소통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가장 천천히 스며드는 위안이었기에 이 아카이브의 첫 장 또한 그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테일러링을 업으로 삼고 일을 하며 어느 순간, 아니 어쩌면 살아오며 줄곧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오래 머물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심연까지 내려가다 보니,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듯 멋있거나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대단하거나 흔히 존경과 이상이라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본래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더욱 희소한 것이겠지요. 무엇인가를 달성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취하지 못하거나 버리거나 놓아야 할 것이 있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균형’이라는 단어가 깊게 남았습니다. 어떤 것을 취하려면 반드시 놓아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더하면 반드시 덜어내야 하는 것이 생기는 것처럼, 삶과 미감 모두는 균형 위에서만 온전해진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우이를 비례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황금비나 삼분할 비례처럼 특정한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사진·영상·글·건축 등 다양한 곳에서 마주한 비례의 원리들은 덧붙이지 않아도 균형을 이루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이는 그것을 옷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오늘의 우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지금껏 쌓아온 모든 질문과 탐구 끝에 남은 고된 과정의 응축된 결과물이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의복의 간소화가 빠르게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한 벌의 수트가 사회적 지위와 태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였지만, 지금은 일상 속에서 점차 단순화되고 축소된 위치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이에게 수트는 여전히 어떤 결심이나 다짐, 혹은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한 과정이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수트를 짓는다는 행위는 곧 삶의 태도를 짓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철학은 브랜드의 방향일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카이브는 완성된 답을 보여주려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묻고 헤매는 과정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우리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옷을 입는 당신이 스스로의 시간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길 바랍니다. 우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덜어내며 남는 것,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본질에 가까운 것을 찾기 위해 묻고 또 묻겠습니다.

앞으로 이곳에는 우이가 품은 철학과 옷을 만드는 과정, 삶과 연결된 이야기, 다양한 예술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옷을 입는 사람의 태도가 담긴 문장을 기록할 것입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선언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과 맺는, 부끄럽지만 진심 어린 다짐입니다. 우이는 옷을 짓듯 기록합니다. 쉽게 소비되는 글이 아니라 오래 남을 문장을 남기려 합니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서툴더라도, 당신의 시간과 함께 깊어지는 기록을 남기겠습니다. 이것이 우이 아카이브의 첫 장입니다.
